살롱 샴푸대 한 대에 1,000만 원, 다카라벨몬트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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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푸대 한 대에 1,000만 원이 넘는다. 의자 한 대에 수백만 원이다. 경대와 기기까지 한 브랜드로 맞추면 매장 하나에 차 몇 대 값이 들어간다.

이 브랜드의 이름은 다카라벨몬트(Takara Belmont)다. 일본 오사카에서 시작한 미용가구 회사다. 한국 미용인 대부분은 이 이름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일을 시작하고, 매장을 연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손을 대는 의자와 샴푸대의 많은 부분이 이 회사와 이어져 있다.
얼마나 하는가
품목별 주력 가격대는 이렇다. 일본 정가 기준이며, 옵션과 수입 비용은 빠져 있다.
| 품목 | 주력 가격대 |
|---|---|
| 샴푸대 | 700만 ~ 1,100만 원 |
| 바버 의자 | 500만 ~ 700만 원 |
| 미스트기 등 기기 | 300만 ~ 450만 원 |
가장 비싼 축은 헤드스파용 샴푸 유닛이다. 고객이 완전히 누운 자세로 샴푸를 받는 방식으로, 상위 모델은 한 대 값이 1,000만 원을 넘는다. 의자 열 대와 샴푸대 세 대만 놓아도 가구 값이 억 단위에 가까워진다.
오사카의 주물공장에서
시작은 의자가 아니었다. 1921년, 주물공장에서 일을 배우던 청년 요시카와 히데노부가 오사카의 어려워진 주물공장 하나를 넘겨받았다. 쇳물을 부어 부품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그가 눈여겨본 것은 이용의자에 들어가는 주물 부품이었다. 부품을 만들다 보니 의자 전체를 만들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고, 1931년 완제품 이용의자를 내놓았다. 당시 오사카에는 비슷한 의자를 만드는 경쟁사만 17곳이 있었다. 다카라는 그중 하나였다.
스승이 있었다
다카라가 처음 만든 의자에는 모델이 있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코켄(Koken)이다.
코켄은 독일계 이민자 어니스트 코켄이 세운 회사다. 그는 1900년 무렵 유압으로 오르내리는 이용의자와, 레버 하나로 의자의 움직임을 조작하는 장치를 내놓았다. 발로 밟으면 올라가고 레버를 당기면 눕는, 지금 우리가 아는 이용의자의 틀이 여기서 나왔다.
다카라는 이 코켄의 의자를 모델로 삼아 첫 의자를 만들었다. 100년 헤리티지의 출발점은 배움이었다.

의자 24대를 들고 미국으로
1955년, 다카라는 미국 시애틀 국제무역박람회에 이용의자 24대를 출품했다. 의자는 현지에서 전부 팔렸다. 이듬해인 1956년, 다카라는 뉴욕 5번가에 첫 해외 법인을 냈다.
미국 시장에서 다카라는 기존 미국 의자와 거의 같은 형태의 의자를 20~30% 낮은 가격에 팔며 자리를 넓힌 것으로 전해진다. 품질과 소재 문제로 초기에는 실패도 겪었지만, 구조를 다시 설계하고 소재를 바꾸며 평판을 쌓았다.
여기서 익숙한 장면이 겹친다. 지금 한국에서 다카라를 닮은 더 저렴한 가구가 널리 쓰이는 것처럼, 그 시절 미국에서는 다카라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배우던 회사가 스승의 주인이 되다
1969년, 다카라는 세인트루이스에 있던 코켄의 공장과 생산 설비를 인수했다. 이어서 코켄의 이름과 상표, 특허까지 넘겨받았다. 첫 의자를 만든 지 38년 만이다.
배우던 회사가 스승의 주인이 됐다.
같은 해 회사 이름도 지금의 다카라벨몬트로 통합됐다. 이 무렵 다카라는 미국 이용의자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배운 것에 무엇을 더했는가
다카라가 스승을 넘어설 수 있었던 까닭은 배운 데서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전동 이용의자. 1962년, 다카라는 발로 밟아 올리던 의자를 전동으로 바꾼 모델을 내놓았다. 출시하자마자 크게 팔렸다.
만국박람회의 미용 전시관. 1970년 오사카 만박에 다카라는 '다카라 뷰틸리온'이라는 단독 전시관을 세웠다. 주제는 '아름답게 사는 기쁨'이었다. 설계는 건축가 구로카와 기쇼가 맡았다. 공장에서 미리 만든 강관과 스테인리스 캡슐을 현장으로 옮겨 단 7일 만에 조립했다. 안내원 유니폼은 디자이너 고시노 준코가 만들었다. 미용이 기술을 넘어 문화라는 것을 세계 앞에 내보인 자리였다.
가구에서 미용 전체로. 1977년 헤어 화장품 브랜드 르벨(LebeL)을 만들었고, 에스테틱과 네일, 치과·의료기기로 영역을 넓혔다. 살롱에서는 누운 자세로 받는 헤드스파 유닛 YUME 시리즈가 대표 제품이 됐다.
55년 뒤, 다시 만박으로. 2025년 오사카·간사이 만박에 다카라는 '미래의 헬스케어 살롱'을 들고 돌아왔다. 살롱이 머리를 하는 곳을 넘어 건강을 돌보는 곳이 된다는 제안이었다.
한국에서 다카라벨몬트는

한국에서 다카라벨몬트는 그 가치를 알아보는 소수의 살롱에서만 쓰인다. 이유는 가격이다.
그렇다고 우리와 먼 이름은 아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미용가구의 많은 형태가 다카라벨몬트에서 퍼져 나왔다. 이름은 몰랐지만, 우리는 그 영향 안에서 일해왔다.
배우는 것과 넘어서는 것
처음에는 누구나 배운다. 디자이너도 선배의 커트를 보고 배우며 시작한다. 다카라도 그랬다.
차이는 그다음이다. 다카라는 배운 의자에 전동 장치를 더했고, 미용을 박람회에 세웠고, 끝내 스승의 회사를 품었다.
배운 것에 무엇을 더했는가. 100년 뒤에 남는 이름은 거기서 갈린다.
참고: 다카라벨몬트 공식 연혁 및 헤리티지 자료 · Estetica Magazine(2022) · 만박기념공원 '다카라 뷰틸리온' · Beautopia(2025 만박) · Wikipedia 'Barber chair' / 사진: 다카라벨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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